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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화엄경전(화엄경華嚴經)
 스님  | 2005·03·09 15:41 | HIT : 1,168 | VOTE : 60

서력기원을  전후로 해서 이타(利他)의 이상을 드높여 일어나기 시작한 대승불교는 그 운동을 추진하면서 여러 경전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화엄경>이라고 하는 방대한 경전의 성립을 보게 되었으며 그와 관계있는 여러경전들이 한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이 그룹에 속하는  여러  경전을 총칭하여  화엄경류[華嚴經類]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엄경]과  [화엄경류]를 일괄해서 화엄경전[華嚴經典]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면  화엄경전은  어떻게  성립되었으며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가? 화엄경전에 관심을 갖는것은 그것이 바로 화엄사상의 모태이기 때문이다. 동양문화의 정화(精華)라고도 하는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경전이면서도 여러 부분이 폭넓게 많은 지역에서 회자되고 있는 경전이다. 특히 문학과 예술분야에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상세히 말하자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光佛華嚴經>이라고  불리우고,  산스크리트어로는 Buddha-avatamsak-nama-man-avaipulya-su-tra, 붓다의 장엄이라고 말하는 광대한 경전이라 한다.  현재 전하는 <화엄경>으로는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1, 동진(東晋)의 붇다바트라(Budd-habhadra, 불대마발타라佛大馬跋陀羅, 359-429)가 번역한 60권본, (번역  당시는  50권이었으나  교정을   다시   해서   60권본이 되었다.)

2, 당(唐)의 식차난다(Siksan-anda, 실차난타實叉難陀, 625-710)가  번역한  80권본. 전자를 60화엄, 진역경, 구역화엄경이라 하고 후자는 80화엄,  당화엄경, 신역화엄경이라 칭한다.

3. 푸라주우나(Prajna,반야般若)가 번역한 40권본, 40화엄, 정원경, 행원품이라 불리우고 신구역 60권본, 80권본의 제일 마지막 부분인 [입법계품]에 해당되는 내용의 번역이다.

4. 지나미트라(Jinaitra)등역 Sans-rgyas phal-po che  shes-bya-basin-tu rgyas-pa chen-pohi mdo(불화엄이라 이름하는 대방광경45품, 9세기말경 번역, 약칭 장역화엄경)이 중에서  제3의 정원경은 다른  3종의  화엄경의 제일 마지막 부분, 즉 제1,제2,[입법계품], 제 4, "화장엄품華莊嚴品"이 현저하게 증정되었다. 전체가 "입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이라는 하나의  품으로 성립되었기에 성격이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이른바 화엄경으로서는 제1, 제2의 60권본과 80권본과 티베트 역이 전해온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엄경>의  산스크리트어본은 완전하게 전해오지 않는다. 산스크리트본이 완전하게 전해오지는 않으나 위에서 살펴본 바, 제1,제2,제4의 각 <화엄경>의 [십지품]과  [입법계품](혹은 [경장엄품])에 해당되는 부분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본 <화엄경>이 존재했다는 것은 당나라 초기의 지엄이 <대자은사화엄범본>을 확인하고 그 범본을 조사했던 사실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그러면 대본<화엄경>은 대략 어떤 내용인가? 그 전체의 골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현존하는 위의 세 본과 위에서 말한 바 지엄이 보았다는 <대자은사화엄범본>등을 비교해  보기로 하자. 여러 본을 대략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을 볼 수 있다.

첫째로  전체의 구성이 이 네 개의 본 사이에도 확실히 서로 다르다. 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는 다음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품의 내용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여래화엄품], [보현소설품]의 두 품은 [티베트화엄]에만 있으면

[십정품]은 [80화엄]과 [티베트화엄]에는 있으나 다른 본에는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품들이 일대일의 대응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60화엄]을  중심으로 말하면 그 [노사나불품]은 [80화엄]에서는 [여래현상품]에서  [비로자나품]까지의 다섯 품으로,  [티베트화엄]과 [자은화엄]에서는 [여래품]에서 [비로자나품]까지의  아홉 품으로 분절. 증정되고 있다.

그리고 [80화엄]의 경우[화장세계품]은[티베트화엄]과 [자은화엄]에서는 [연화장장엄세계해청정공력해조명품]에서 [세계성안주설품]까지의 다섯 품에 해당한다. 또 [60화엄],[80화엄],[티베트화엄]의 제일 마지막 부분인 [입법계품]([계장엄품])이 [자은화엄]에서는 [선재이탑장품],[미륵이탑명선재소문품], [설여래공덕부사의경계상경계입품]등의 세 품으로 분절되고 있다.
이상 몇 가지를 살펴 보았으나 여러 본의 구성과 성립연대, 내용의 증광 발전과정을 비교검토하기에는 신문원고라는 제약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80화엄]과  [티베트화엄]만을  골라  몇  가지  살펴보기로 하자.

[80화엄]의 [화장세계품]과 [티베트화엄]중 그에 대응하는 다섯 품을 비교해보면 후자는 다섯 품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증보의 흔적이 전혀없고 오히려 설상(說相)에 있어서는 [80화엄]보다도 고형을 갖추고 있다. 이런 경우를  살펴보면  [80화엄]계통의   <화엄경>과   [티베트화엄]  계통의 <화엄경>은 서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자는 원본의 내용적 개정에 중점을 두고 있고 후자는  여러  품들을  새롭게  설정.  도입함에 따라  원본의 전체적인 구상을 확대하려고 한 듯하다.  그러나  [십정품]을 공통으로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 두 계통은 개변의 과정에  있어서 한 때 교섭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화엄경>에 있어서 교주인 비로자나불은 직접  설법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설의 무대에는 언제나 등장해서 그 중심에 자리한다.  그러나  무대가, 즉 회좌가 지상에서 천상으로 그리고 다시 지상으로 잇달아  바뀌어진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80화엄]은 7천9회이고 타화천궁을 회좌로 한 것은 [십지품]뿐이다. [신정품]에서 [여래출현품]까지는 중회보광법당, [이세간품]은  삼중회보 법당의  설법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도 [60화엄]과 [자은화엄]이 발전사적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대한 [화엄경]은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서력 기원전후부터 1.2세기에 걸쳐 조금씩 정리되어  종합된 것이 <화엄경>이다. 화엄경의 내용은 붓다의 깨치신 경지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리불이나 목건련 같이 훌륭한 제자들까지도 벙어리와 귀머거리처럼 붓다의 설법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경전의 내용은 복잡하고 광대해서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정독하는 동안에 무변대해와도 같은 붓다의 경지에 다가서게 될 것이다.

[화엄경]의 근본적인 특징은 사사무애와 법계연기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즉 궁극의  진리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일체사상이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성립되었으면서도  서로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살도의 실천을 설하고 있다. 보살도의 실천에는 자리와 이타의 두 길이 있다고 하나 보살도에 있어서는 타인을 구제하는 것이  자리이기  때문에 자리즉이타(自利卽利他)인 것이다.

  우리와  인연이  깊은 [60화엄]은 7처 8회 34품 ([80화엄]은  7처  9회 39품)으로 성립되어 있다. 7처 9회란 설법의 장소와 그  회좌의  수이다. 34품이란  34장이란  뜻이다.  제1의 적멸도량회와  제2보광회는  지상의 회좌이고, 제3도리천궁회와 제4야마천궁회, 제5도솔천궁회, 제6타화자제천궁회는 모두 천상의회자이다. 설법이 진행됨에 따라서 회좌의 장소도  점차 천상으로 올라간다. 제7은 다시 지상의 보광법당회이며  마지막의  제8도 지상의 서다림회, 즉 기원정사에 있어서의 회좌이고 여기에서 [입법계품]을 설하게 된다. <화엄경>의 여러가지 특징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으나 지명이나 등장인물의 지위나 직업, 언어적 특징 등을 통해서 경전의 성립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지위,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는가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입법계품]을 읽은 경험이 있다면 잘 알 수 있는바와 같이 [화엄경]은  전체를 통해서  비로자나불  자신의 설법은 아니다. 주로 보살들에 의해서  설해진다.  더욱이  [입법계품]은 사리불 등 성문(聲聞)의 대제자들의 경지를 훨씬 넘어선 내용이다. 그러므로 귀가있으나 귀머거리 같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화엄경은 매우  엘리트적인 경전으로  볼. 보살  만이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음직하다. 그러나 화엄경은 그와 같은 부처의  세계가  일체  중생에게 개방되었음을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특히 [40화엄]의 선지식(Kalyanamitra)들의 묘사는  주목된다.  주인공 선재동자가 차례로 방문하게 되는 상대방 선지식들의 지위나 신분,  또는 직업을 보면  보살. 비구. 장자. 여성  재속신자. 선인. 바라문. 처녀. 소년. 자산가. 국왕. 편력행자. 어부. 비구니. 경건한 여성. 보살. 神의  아들. 밤의여신. 룸비니원의 여신. 석가족의 딸. 여신. 신의 딸. 소년 선생. 장자의 소년. 소년소녀 등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선 선지식들  전체는 모든 지위. 계층. 신분. 직업이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차별이 없다.  단순히  대승적  평등의 이상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사상표현에 있어서 [40화엄]에  있어서의 종교운동 자체가 사회의  계급과  신분과 직업을 뛰어넘어 널리 지원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러한 개괄  이상의 또 다른 문제도 내포되어 있다. 즉  53인의 선지식 가운데에는 장자와 자산가가 7명이고 여성이 8명(신까지 포함하면20명)에 이른다. 그리고 보살이  4명, 비구가  5명 등장하지만  비교적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본다. 당시 대승운동의 주역의 지지기반이 장자. 자산가. 여성등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빼놓을 수 없는 특색의 하나는 트라비타(dramida) 사람인 매가(Megha)와 어사(漁師) 비이라(Vaira)가  각각 다섯번째와  스물 두번째의  선지식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트라비타는 아리아민족에 의해서 그  태반이  정복된 인도 선주민들로서, 일반적으로 보면 隸民으로 늘사회의 최하층에 속한다.
어사도 타사(da~sa)에 속해서 아리아 민족에 대한 선주민의 적대자, 피정복민을 의미한다고 알려진 바와 같이 예민 계층의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이라고 한다. 위의 두 계층은 실질적으로 거의 같은 의미내용을 가진 최하층의 사회적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40화엄]의  편집자들이 그들을 선지식으로서 등장시킨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 이유의 하나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상적으로 집약되어 가는 종교운동이 그들 예민계층에서도 무엇인가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저항이나 반대는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인도사회가 가진 전통의  카스트적인 인식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타의 이상을  높이  들고 대승운동을 전개하던 사람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으로 카스트사회의 인식의 벽을 헐고 예민계층을 종교적 . 정신적으로 해방시키려는  목적도 없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언어학적으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즉 [40화엄]과 그에 대응하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시루파-비쥬니야(Silpabhijna, 선지중예동자善知衆藝童子)가 설하는 42자문(字門) 가운데 ysa(문門.야사也娑)가 있다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 자음(字音)은 인도고유의 것이 아니고  코-단(간문于門)에서 기원한 것으로, 인도에서는 기원전후에 서북인도의 서역기원의 왕조에  속하는  여러 나라의  비문이나 화폐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점도 다시 [입법계품], 나아가서 [화엄경]  전체의 성립을 생각하는데에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음직하다. 그러나 화엄경전의 성립과 유포에 관한 여러 문제들은 현재의 단계로서는  명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면 이러한 화엄경전이 우리 나라에 받아들여져서 어떻게  이해되고  소화되었던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자장을 보면 그의 행장은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 선덕여왕 때(623-646)활약한 것으로 보아서 원효나 의상보다는 선배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자장관계의 근소한 전기를 보면 지식수(知識樹)의 고사가 나온다. 즉 자장은 자기 자신이 출생했던 리제(里第)를 개조해서 원녕사(元寧寺)라 했고 그절의 낙성식 때 화엄만계를 강(講)하여 화엄의 교의를 천명했다고 한다. 자장이 특히 지식수를 심어 화엄만계를 강한 뜻은[40화엄], 즉 [입법계품]의 초점이라고 볼 수 있는 소년 구도자 선재가  53선지식을 차례로 찾아뵙는 동안 인간인 박지범부이면서도 능히 불과를 성취해서 일만팔천대중의 대표자로 미륵누각에 친히 물어 자신의 삼세인과와 제불의 삼세인과를  동시에 깨쳤다는 내용을 교시한 것으로서 매우 흥미롭다고 하겠다. 이로 미루어 보면 자장의 사상, 그리고 산라인의 사유의 심층에 화엄사상이 깊이 침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라인들은 불교를 받아들여 수용할 때 타국으로부터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신라국이 과거로부터  불교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사유하고 그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신라국을 과거불의 주처였다고 하며 [가섭의 연좌석]이 있었다고 하여 그를 주체적으로 제시한 예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그저 황당무계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무시해버리기에 앞서, 전하여 온 엄연한  신앙의 사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유방법은 신라이후에도 간헐적으로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저변에 잠재되어 전해오기 때문이다.

신라가 과거불의 연고지 였다고 믿어오던 사람들에게는 불교가 외래종교였다고 하는 이미지는 긍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화엄경>과 금강산관계도 화엄사상의 수용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하겠다. 금강산을 화엄도량으로 보아온 것은 사실이다.  금강산의  최고봉을  비로봉으로 애칭하고 [80화엄경] 보살처품의 내용을 옮겨 법기(法起)보살의 주처로 상정하고 불교의 의식가운데 향수해례에서는  [나무금산  법기회회  제불제보살]로 예불을 드리고 있음을 보게된다. 끝으로 화엄교학을 받아들인 의상. 원효. 설잠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의상이 당나라 지엄문하에서 30구2백10자의 법성게를 탄생시킨 것은 실로 삼관(三觀)의 깊은 뜻을 포괄하고 십현(十玄)의 식미(蝕美)를  망라한  화엄의  종요(宗要)요 [화엄30송]이고 사사로운 작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의상이  스스로 이것을 [원교圓敎의 종요宗要]라고 부를 것은 이 때문이다.
화엄제2조인 지엄이 의상으로 하여금"화엄30송"을 만들게 하고, 이를 해설하게 한 것은 일종의 사상적 지주로서의 후계자로 지정한 것을 의미한다.

원효가 소를 짓고 서를 붙인 <화엄경>은 다름아닌 60권본이다. 이른바 [진역晋譯 화엄경류서華嚴經疏序]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화엄경>은 성문 연각의 이승은 自利만을 추구하는데  비해  보살은 이타(利他)를 근본으로 하는 이엽형이다. 그러기 때문에 보살과 삼ㅅㅔ(三世)여러 부처님만이 화엄의 진리의 동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마치 봉황이 푸른 구름을 타고 올라 산악의 낮음을 바라봄과 같고 하백(河伯)이 한바다에 이르러 시냇물이 좁았음을 겸연쩍어함과 같으니 불도를 배우는자는 이 경전의 너른문에 들어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배운것이 트인 공부가 아니었음을 알리라. 말하면서도 원효는 다시 말한다.

그렇지만 날개짧은 작은 새는 산림(山林)에서 크고  있고,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는 여울에 살면서도 본성이 편안한 법이니 현근한 방편의 가르침도 버릴 수 없다"라고 한다.

다음 설잠(매월당)은 [80화엄]을 연했다. 설잠이 말하기를 "세존의 7촌(村)에 나는 여기 단지 1촌(村)뿐이요, 세존의 9회에 나는 단지 1회뿐이요, 세존의 경을 설한 것이 80권임에 나는 단지 1구뿐이라" 설잠이 말한 선적(禪的)인 내용은 법계 또는 법성의 장이 바로 중생의 신심본채요, 자기 열착이라고하는 확언은 선기(性起)  즉, 불경계에서 오는 것이고, 연기차원의 궁리에 의하여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당체전장(當體全彰)의 소식이라고 보아진다.

  
  밀교경전(대일경大日經)  스님 05·03·09 1453 59
  법화,화엄경전(십지경론十地經論)  스님 05·03·02 1193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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