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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등경전(능엄경楞嚴經)
 스님  | 2005·03·02 14:09 | HIT : 1,655 | VOTE : 64
<성립배경과 비중>

불교에서 진정한 의미의 종교성을 지닌 것은 대승불교이다.  초기(원시)불교나 부파(소승)불교는 편협한 사상체계를 지닌  까닭에  인간구제에서 원만치 못하다.
대승불교는 그러한 약점들을 극복한 가장 원만한 종교성의 발현  체계이다. 가령 인간의 행위 양식을 지(知0. 의(意). 정(情)으로 구분할 때, 초기불교적  행위양식은  의지적 성향이  강하며,  부파불교의 것은 지적인 이론에  밝고, 대승불교의 지향은 정적인 관점에 무게를 둔다.
특히 초기나 부파불교의 행위성향은 지나치게 인간의 정적인 면을 억제하고 그저 의지 강하고 지적교만에 빠지도록 하는 인간교육 내지는 종교지표를 설정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종교실천은 매우 금욕적이고 고집 센 수행인을  만들어  갔고, 종교지식은 머리카락까지  셀려는  번쇄한 철학도를 만들었다.  개인적인 인내와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로 고독한 자기싸움을  연출했으며,  추상적 종교관념은 자기 우월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도그마적 권위를  등에  업고 치장해 갔다.
여느 경전에서나 머리에 나오는 6성취의 정형구는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그런 역사가 대략 5백년이나 지속됐다. 무엇이든 오래 머물수록 썩기 마련인 바, 석가모니의 신선한 가르침도 시간이 흐를수록 못난  제자들의 아집과 종권에 의해 변질돼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활발한 인간성을 어두운 골방에 처넣어  비인간화시키는  제도로 고착되어 갔다. 이제 여기저기서 인간의 본래 자리 곧 아무런 때묻지 않은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여태까지 인간의 정적인 면을 아주 말살하고 인간을 딱딱한 존재, 근엄한 선비, 고집장이 외곪인으로 만들었을 뿐, 훈훈한 기분과 웃음깃든 분위기는 있지 못했다.
굳은 얼굴과 긴장된 자기 관리만이 있을 뿐, 음악을 듣는다거나  놀이를 하는 따위 감성적 행위는 전혀 용납될 수 없었기에, 타락은 덜해갈지라도 보다 중요한 인간성의 아기자기한 기운이 사라져 갔던 것이다.
그래서  승단은 비록 정예화 돼 갔을지라도 일반 서민과  대중은  승단을 등지고 추억이나마 옛 석가모니 부처님의 따스한 정서를 느끼려고 불탑예배를 하였다.
소위 성지순례와 불상예불이 그것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정적인  기쁨과 종교적 발원을 가졌다. 이런 행동과 운동의 무리가 대승불교를  주장하는 깨어 있는 자들이었다.
세태는  시간이 갈수록 대승불교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갔고,  대승불교 운동가들은 그것을 십분 활용하여 인간의 정적인 면을 기저로한 사상체계를 세워갔다.

그 정적인 가치는 자비이며, 그 사상체계는 사회(중생)구제이고, 그 주체는 보살 즉 불자였다. 이 기본구조에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숱한 대승불교의 경전군이 쏟아져  나왔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사상을  알리는  경전들은 한결같이  자비를 바탕으로 사회구제를 외치는 성실한  불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승불교의  역사도 7백년정도 흐르다보니,  또  썩어터지는 인간의 제도우상을 안고있었다. 더욱이 인도적 배경이 아닌 중국의 이질적 문화요소까지 겹치어, 마냥 생생하기만 했던 그 대승불교의 정신은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채 지적인 희롱과 의지적기만 그리고 정적인 탐닉에 허둥대고 있었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새로운 도전을 받아 응전해야 하는 격돌속에 있는데, 중국땅에 정착한 대승불교는 창조성을 발휘해 교단 내외적 도전을 응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냥 과거의 영광을 팔아  현실적  기득권의 향유에만 눈을 돌렸던 것이다.
급기야 다시 안으로 썩고 밖으로 압력을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것을  우리는 법란이라 하지만, 그 근본 요인은  해이해져  대승불교의 정신이 증발해버린 탓이다.
그래서 어설픈 정치승이 나오고 사이비 도인이 나와, 더욱 부처를  팔아 자기 배만 채우는 상업종교로 전락돼 갔다.(이런 현상은 오늘날도 비슷하다) 어느 때나 있었던 부패현상이지만, 적어도 <능엄경>이  나올  당시의 시대적  배경은  법란을 크게 두 번이나(물론 작게는  여러  번이었지만) 겪고난 다음인지라 선각자들은 석가모니의 그 정신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던 것이다.
그 정신이란  지. 정. 의적인 행위양식을 고루 갖춘 사회구제  즉  시대적 영도능력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교단적 문제를 안고 씨름하면서 제2의 석가모니 부처님상을 그렸던 것이다.

그것이<능엄경>이 나오게 된 큰 동기이다.<능엄경>의 전역사정을 알리는 최초의  문헌은  저 유명한  지승(智昇,  ~740)의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730년에 지음)에 나타나 있다. 그 목록 제9에 경의성립과정이 대강 나온다.(A)"사문석 회적은 순주 사람인데, 고향의 나부산남루사에 머물고 있었다.
그 산은 성성(仙聖)들이 유거하는 곳이다. 회적은 오래도록 경론들을 익혀 아주 해박하였으며  구류칠략에도  밝았다.  그런데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해변가에는 자주 인도 스님들이 와서 머물곤 하였다.
회적은 나아가 인도서적과 인도언어를 배워 다 통달했다.  한번은  삼장 보리류지(Bodhiruci,~727)가 <보적경>을 번역할 때 멀리서 회적을 불러와 증의케 했다. 회적은 일을 마치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뒤에 광부에서 노닐다가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인도 스님이  범어경전 1엽을 싣고 온것을 만났다. 청해같이 이를 번역하여 묶어10권으로 만들었다. 곧<대불정만행수능엄경>이 그것이다. 회적은 경지(經旨)를 필수하고 겸해 문리도 증철했다. 그 인도스님은 경을  전역하는 일을 마치자 사라졌는데 그 가는 바를 알 수 없다.

  남사(南使)에 의해 경을 유통하여 이곳(즉 장안)까지 이르렀다.  "이  기록에 의하면, <능엄경>은 광동성 순주에서 회적스님이 어느 무명의 인도스님을 만나 그가 가져온 경을 같이 번역하고 필수. 윤문까지 해서 이룩된 것이다.
말하자면 <능엄경>은 회적에 의해 번역돼서 유포된 것이다. 그런데, 지승이 7백30년에 쓴<續古今譯經圖記>에 의하면 보통경전이 번역되는 데에 갖춰야 할 요소들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B)"
사문  반라밀제(Paramiti)는 중국말로 극량인데 중인도 사람이다.  도에 뜻을 품고 여러곳을 시찰하며 인연따라 제도했다. 전전 교화하더니 중국에와 광주 제지사에 머물었다.

대중이  그의 해박함을 알고 가서 배우는 이들도 많았다. 중생을 유익케 함을 염두에 두고 신비한 기적도 행했다.신룡 원년(705)5월23일,  드디어 관정부에서 1품을 송출해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이라 이름했다. 1부 10권이다.
오장국 사문 미가석가는 역어하고, 보살계  제자  전정간대부동중서문하평장사청과 방융이 필수하고, 순주 나부산 남루사 사문 회적은 증역했다. 그 (반라밀제)스님은 경을  전역하는 일을  마치고 배를  띄워  서쪽으로 돌아갔다. 남사에 의해 (이 경이) 이곳에 유통되게 됐다.

"지금 (B)문헌은 경의 전역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A)는  매우 불투명하다. 그러나(A).(B)가 같은 저자의 기술인 만큼,  그  서술양식에 따라 (A)가 먼저고 (B)는 뒤에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왜  같은 지은이의 같은 해 저술인데도 전혀 다른 전역배경이 설명돼 있는가?
바로 이점이 문제다. 이것은 처음엔(A)의 경본이 있었고 다시 뒤엔 (B)의 경본이 있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그 때문에 다른 것이다. 즉 애초에<능엄경>은 중국에서 찬술된 것이다.(B)의 주장은 이를 숨기고 경이 인도에서 왔다고 하려고 의도된 기술이다.
경이 그같이 중국찬술이란 점은 경의 내용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경은 대체로 용어나 기술상 번역가들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용어들을  동원해서 함축성 있게 북잡한 교리를 전개하고 있다.

대략 여덟 글자를 한 문장으로 구성하고 있고, 교리도 백화점처럼 다양한 체계를 지닌다. 또한 다른 대승경전들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고유명사나 교리, 용어 등이 유별나게 많다. 가령, 7大, 7趣, 하늘의 건립,  12류생, 3첩유변 등이다. 말하자면 경 내용상 중국인의 정서에맞도록 독서인층을 향해 설해져 있고 종합적인 수행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교적 요소나 유교적 요소 또 주술적 요소 등이 한데 어울린 불교종합경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송나라 이후 점점 여느 경전보다도 이 경이 널리 읽혀지고 수행의 지침서로 출가. 재가인을 막론하고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유가학자들마저 <능엄경>을 애독하고 주석서까지 냈으니, 알만하지 않는가!  그만큼  이 경은 중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권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중기이후 교문. 선문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이 경은 <화엄경>이나 <법화경>을 능가한다.

<사상과 특징>

<능엄경>은 중국불교가 제대로 정착되고 중국적인 꽃을 피우려고 할  때, 중국인의 정서에 맞게 찬술된 중국최고의寶典이다. 그 기본틀은<화엄경>에 있지만 불교실천을 현실에 끌어들여 누구에게나 어울릴 수 있는 의용(依用)경전에 걸맞게 <능엄경>은 다양한 교리내용을 함축성있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경은 마음의 문제를 차원 깊이 다루고 있다. 불교를 마음을 깨치는 종교로 정의할 때 이 마음 자체가 다분히 유식학적 용어이지만 경은 처음에 이 마음의 소재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 허실을 공개하고 있다.
그 형식은 세존과 아난이 대화하는 가운데 많이 안다는  아난의  부족한 점과 그릇된 견해 등을 하나씩 논파하고 있다.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은  매우  어렵고도 핵심적인 요체인 까닭에 경의  많은  분량을 차지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한마디로 마음은 본디 영묘하고 원명한 진심이지만  어쩌다  외부 환경때문에 이렇게 고통받는 범부가  됐다는 것이므로, 그 외부조건(즉 대상)에 새로운 인식과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인식이란 외부 조건을 가변적인 것 즉 바꿔져야 할 장애로 보고  그것을 없앨  의욕을  갖는  일이다.  그래서 그 조건이 바뀌어 새로운 조건인 긍정요건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그 내용인 본심이 제대로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수행이란  외부조건(객진번뇌)을  제거한다고  할  때  그것은 부정적 요건에서 긍정적 조건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이  작업은 내용과 형식이 하나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능엄경>은  그  형식의 개조에 힘쓴다. 그 점에서 이 경은 어떤 경보다도 수행의 형식에  많은  비중을 둔다.

간혹 어떤 선문에선 무수무증(無修無證)을 외치며 막행막식하는  탈형식적  행동을 많이 하는데, 이는 외부조건의 위력이나 존재성을 아주 무시한  관념론의 산물이다. 종교가 현실에서 정당성과 합리성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오로지 관념화한 나머지대상(객진번뇌)을 도외시한 것은 오히려 대상에 사로잡히는 꼴이 되고 만다.
형식이 깨졌으니 내용인들 별 수 있겠는가? 아무런 소용없는 희롱거리인 것을. 그래서 경은 내용인 본심의 실용성과 효율성을 위해, 보이는 대상 즉 5온.12처.18계.7대 등이 곧 여래장임을 천명하고 있다.
즉 외부 조건인 대상이 여래장으로 작용할 때 그 본심이 제대로 드러나 광명해 진다. 우리는 5온 등 외부 조건을 마냥 번뇌덩어리로만  생각한다. 그 번뇌가 전환되어 열반이 되는 줄 모른다. 경은 그런 고정관념을  아주 자세히 비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용이 형식을 제대로 갖춰야 제 노릇을 하듯, 재삼 본심(여래)이 드러나려면 형식인 외부조건이 탈바꿈해야한다는 것이다.

탈바꿈하는 데에도 간단치 않다. 적게는 55단계 넓게는  60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55나  60이란 숫자는 탈바꿈하는 데에 거쳐야  하는  숱한 과정과 차례를 의미한다. 갑자기 되는 건 아니다. 이를 보살의  계차위(階差位)라 한다. 경은 <화엄경>이나 <영락경> 등의 설을 인용해 장엄스럽게  인간의 형식을 바꾸는 과정을 그려 놓고 있다.
여기서 교육이 성립된다. 교육은 한 인간의 내부적 대상에 의해 즉 형식을 바로 잡는 작업인 것이다.(객진번뇌에서 본심으로 되돌리는 작업에서 그 번뇌를 전환시켜 열반으로 하는 것이다.)
경은 자세히 인간 교육적 형식의 탈바꿈을 논설하고 있어서 모든 불자의 귀감이 되고 남는다. 다음엔 그런 형식적 탈바꿈을 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방법으로 온몸으로 뛰는 현장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6장의 관음(이근)원통과  제7장 능엄주 지송이  바로 그것이다. 관음원통이란 신.구.의가 함께 어울린작업이다. 관음원통의 대표적 진언이 능엄주이다. 그리고 관음이나 주문은 현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한 형식이다. 경은 모든 방편 중에서 관음원통(또는 주문)이 가장 으뜸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행이나  삶 또는 고고한 종교도 반드시 현실성의  효용성을  배제해선 아니 된다는 뜻이다. 어려운 철학이나 관념의 유희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의 안락과 이익을 더할 솔직한 행위 즉 불자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온몸으로 뛰는 현실적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경은 그 주문의 실천적 확장을 위해 쓰여졌다. <능엄경>은 애당초 인간의 현실적  이익과 안락을 위해 설해졌다는 것이다. 비록 어구나 교설이 어려운 한자나 추상적 용어들로 짜여져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한없는 현실적 인간애를 기저로 하고 있다.
그리고 경의 제8.9.10은 <능엄경>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구성과  내용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실천상에서 생기는 숱한 시행착오와 실천의 어려움을 제시하고 있다.
소위 선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50가지 마구니 상념들인 그 허상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경계하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는 요점이란 어떠한  외부적 변화에도 핵심을 잃지 않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 변화에 속으면 그걸로 타락되는 사이비가 된다. 이는 시행착오가  늘 있을 수 있는 취약점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야 하는 인간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만으론 제 기능을 못한다. 반드시 형식이 갖춰져야  명실상부한 기능이 성립된다.
경은 시종일관 인간의 원만한 삶을 향하여 내용과 형식의 갖춤을 외치고 있다. 그것을 위해 내용인 본심은 본래 원명하므로 건드릴  것은  없고, 오직 객진번뇌 격인 형식을 탈바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외부조건인 환경. 법. 제도 같은 수단. 과정을 아주 중요시하고 그것의 완비나 합리적 정리를 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결과, 경은 인간의 실천적 과정을 중요시하고, 탈바꿈하는 형식과 단계의  의미를  한마디로 천명하여 돈오돈수<頓悟漸修>를 강조한다.

제10권 마지막에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돈오점수란 온 몸으로 실천하여 내용과  형식이  명실상부하는 기능이 이뤄짐을 말한다.  돈오는  앎이고 점수는 실천이다. 그러나 앎에 의해 더욱 실천이 된다. 마찬가지로 돈오는 점수에 의해 더욱 밝아지고 점수는 돈오에 의해 더욱 실감된다.
이것이 온몸으로 뛴다는 경의[깨달음]에 대한 요지이다. 그러므로<능엄경>은 보통 말하는 지행합일된 종교행위를 실행적으로 강조하는 특징을 갖는다. 종교는 현실에 안락과 이익을 가져다주는 실천에 있지, 그저 관념의 장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은  그래서 옛부터 선문에서  늘 애용돼 왔던 것이다.

  
  법화,화엄경전(법화경法華經)  스님 05·03·02 1102 65
  방등경전(원각경圓覺經)  스님 05·02·19 1556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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